[한국강사신문 최종엽 칼럼니스트]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시인 고은의 「그 꽃」 이라는 시는 열다섯 글자로 구성된다. 이 열다섯 글자는 원고지 150장으로도 그려내지 못할 우리의 인생을 판화처럼 분명하게 찍어냈다. 그 여운은 산을 올라가고 그 산을 내려오는 만큼이나 길고도 깊게 느껴진다. 소중한 것은 대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가온다. 졸업하기 전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고루하기만 했는데, 졸업 후에 되돌아보면 그것이 기회였음을 알게 된다.

재직 중에는 흐트러진 일상이 지루하기만 했는데, 퇴직 후 생각해보면 그것이 기회였음을 알게 된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돼야 배우가 왜 그렇게 1막에서 치열하게 울부짖었는지를 관객들은 알게 된다. 동네 뒷산이 아니고서야 정상에 오르기 쉬운 산은 하나도 없다는 마것을 등산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솔밭 길을 지나는 초입까지는 여유가 있지만, 산 중턱 바위 언덕길로 들어서면 여유는 없어지고, 긴장과 함께 오로지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정상을 밟을 때까지 앞 사람만 따라 꾸역꾸역 올라만 간다. 올라가는 길은 거의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다. 올라갈 때 그 꽃을 왜 못 보았을까? 스물일곱 청년에게 물어보면 아직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마흔일곱 장년에게 물어보면 이해 못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졸업하기 바쁘고, 취직하기 바쁘고, 연애하기 바쁘고, 결혼하기 바쁘고, 아이 키우기 바쁘고, 집장만하기 바쁘고, 양쪽 집안 대소사 챙기기 바쁘고, 주말 챙기기 바쁘고, 생일 챙기랴 바쁘고, 승진 준비하기 바쁘고, 영어에 중국어에 폼 나는 취미 하나 갖느라 바쁘고, 야근에 휴일 근무에 파김치가 되어 소맥 한잔 걸치는 날엔 이게 인생이려니,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하고 위안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침마다 보는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꼭 닮은 47세 먹은 이방인이 나타나게 된다. 지난 20년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말하게 된다.

“이게 아닌데….” 

등산하듯 땀 흘리며 열심히는 살았지만, 정상을 밟지도 못하고 어느 순간 내려오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그 꽃을 찾는다. 그리고 안타까워한다.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 후 주머니 상황이 나빠지기라도 하면, 그 안타까움은 십중팔구 원망으로 바뀐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에 대한 원인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두기 시작한다. 자신의 꿈을 월급으로 맞바꾼 것에 대한 원망을 타인에게 한다. 가난한 부모님을 탓하기도 하고 경제 능력이 없는 배우자를 탓하기도 한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을 탓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탓하기 시작하면 그 꽃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꽃을 찾아낼 수가 없다. 10년이 지나면 다시 작은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도 또 원망하게 된다. 또 헛된 삶을 살았다고 되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반복하다 삶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흔일곱이 되어 직장을 잃었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산에서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이 생각난다면 누구를 원망하는 눈으로는 찾을 수 없다. 그간 함께했던 직장을 원망해서도, 상사나 동료를 원망해서도, 가까운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해서도 안 된다. 원망은 정말 소중한 나의 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소중한 꿈을 보지 못하게 한다. 어차피 올라갈 때 꽃을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등산에 선수라면 모를까 힘들게 올라가는 산에서 처음부터 꽃을 보면서 호사롭게 등산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내려올 때라도 그 꽃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스물일곱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청춘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려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불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흔일곱에 그 꽃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 참고자료 :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한스미디어, 2016)』

최종엽 칼럼리스트는 한양대학교 인재개발교육 석사, 평생학습 박사를 수료했다. 삼성전자㈜ 인사과장, 경영혁신차장, PA부장으로 일한 후 현재 잡솔루션코리아와 카이로스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인문학 강사, 공공기관 전문면접관으로도 활동하며 연간 100회 이상의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논어> 특강은 다양한 조직의 리더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강사경연대회 금상수상, 대한민국명강사(209호)로 위촉되었고, MBC ‘TV특강’, KBC ‘화통’등 여러 방송매체에서 강연 한 바 있다. 
저서로는 『강사트렌드 코리아2020』(공저),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블루타임』, 『사람예찬』(공저), 『서른살 진짜 내인생에 미쳐라』, 『나이아가라에 맞서라』, 『미국특보 105』 등이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